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 7대 고도 (문단 편집) === [[뤄양시]] (낙양) === [include(틀:상세 내용, 문서명=뤄양시)] 중국 고~중세에 시안에 맞먹는 위상을 차지한 양대 고도. 이쪽 역시 [[시안(도시)|시안]]과 마찬가지로 [[낙양지가귀|'낙양의 지가를 올리다.']] 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. 한국에서 장안이 큰 수도의 관용구라면 낙양은 일본에서의 관용구이다.[* 헤이안 시대 중후반기로 가면 낙양의 '낙(洛)'은 [[교토시|교토]]를 의미하는 말로도 쓰였다. 즉 한국어의 '[[서울(동음이의어)|서울]]'에 해당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던 것.] 황하의 지류인 낙수가 남쪽에 흐르고 있어 '낙(洛)' 또는 '낙읍'으로 불리고, 도시의 입지가 워낙에 좋아서 전설적인 왕조인 [[하나라]] 때부터 주요 도시로 거론되던 곳. 서주의 수도 호경이 견융의 공격으로 쑥대밭이 되어 버리면서 동주가 이쪽으로 천도하여 [[춘추전국시대]] 명목상이나마 종죽국인 [[주나라]]의 수도가 되었다. [[서한]] 시대에도 [[고제(전한)|유방]]이 처음에 낙양을 수도로 삼으려 할 정도였고, [[동한]]은 아예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. [[동탁]]의 천도 과정에서 쑥대밭이 되어 한나라 마지막 수도의 자리를 [[쉬창]]에게 내어주었지만, [[조조]]는 이 지역을 꾸준히 복구했고, 선양을 통해 [[위나라]]가 세워진 이후 [[조비]]가 복구한 낙양을 다시 수도로 삼았다. 이후 [[서진]]까지 이어진다. [[오호십육국시대]] 초기 수도로 번창하던 낙양은 다시 이민족들에 의해 파괴되었다. 그러나 여전히 낙양은 대도시 중 한곳으로, 몇번이나 [[동진]]의 북벌 목표가 되었다. 그리고 [[북위]]가 [[선비족]]의 한화정책을 밀어붙이는 와중에서 낙양은 또다시 수도로 주목받게 되었고, [[효문제]]에 의해 이전보다 더 큰 대도시로 확충되어 수도가 되었다. 이후 북위가 분열되고, [[시안(도시)|시안]]을 수도로 한 [[수나라]]에 의해 재통일되었지만 여전히 낙양은 제2수도, 즉 '동도'로 불리며 종종 황제와 조정이 이동하여 정무를 보기도 하였다. [[측천무후]]가 일시적으로 [[당나라]]를 멸하고 세운 무주의 수도로 번영하였다. [[안사의 난]] 때에 [[안록산]]이 세운 [[연(안사의 난)|대연]]의 수도였으며 이후 [[오대십국시대]]에 [[후량]]은 이 지역을 서도하남부로 삼고 제2수도로 중시하였다. 후량을 멸망시킨 후당도 이 곳을 수도로 삼았다. 하지만 이 때를 마지막으로 이 지역은 수도가 되지 못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